
스프링캠프의 시작은 선수에게 희망의 출발점이었다. '과거'를 가슴에 묻고, '미래'를 품는 시기.
캠프가 시작되는 2월은 활동기간의 시작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에게는 바야흐로 새로운 시즌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직 묵은 시즌에 대한 비지니스를 미처 해결하지 못한 선수들이 있다. 이곳 저곳에서 연봉을 둘러싼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린다.
예년과 사뭇 다르다. 통상 이 맘 때 쯤이면 대부분 선수들이 좋든 싫든 합의를 마치고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더 시끄럽다.
삼성 라이온즈 주축 야수 구자욱과 이학주는 캠프행 비행기를 놓쳤다. 일본 오키나와 캠프 출발일인 지난달 30일까지 구단과의 갭 차이를 줄이지 못했다.
두 선수, 상황은 다르다. 구자욱은 삭감폭을 놓고, 이학주는 인상폭을 놓고 이견이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선수와 구단 간 이견은 폭은 거의 비슷하다. 이학주는 2일 아쉬움 속에 구단 최종 제시안을 수용하기로 하고 캠프 합류를 준비한다. 반면, 구자욱은 삭감폭을 두고 아직까지 구단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날 이학주가 계약함으로써 팀 내 유일한 미계약자로 남게 됐다.
NC 다이노스도 진통을 겪고 있다. 미계약 상태에서 미국 애리조나 캠프에 합류했던 투수 김진성이 스프링캠프에 도착하마자 짐을 싸서 돌아왔다. 지난해 연봉 2억원에서 20%가 깎인 1억6000만원에 계약한 직후 현지시간 1일 오전 귀국길에 올랐다.
NC 측은 "김진성이 연봉계약을 마친 뒤 운영팀장, 감독님 면담을 신청해 속상한 마음을 털어놨다. 그리고 상의 결과 한국으로 돌아가 잠시 마음을 추스르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간판 야수 박민우와 핵심 불펜 박진우도 캠프 현장에서 사인했다. 3억8000만원에서 36.8% 인상된 5억2000만원에 도장을 찍은 박민우는 출국길에 구단의 협상 태도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창원에서 재활 중인 투수 이민호는 아직 협상을 마치지 못했다.
이미 계약을 마치고 캠프 길에 오른 많은 선수들도 연봉 협상 결과에 대해 아쉬움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예년보다 시끌시끌한 연봉 협상 테이블. 이유가 뭘까.
과거와 같지 않게 빡빡해진 구단의 미묘한 변화 때문이다. 대부분 구단들은 지난해부터 지출을 줄였다. 전반적 프로야구 인기의 하락추세와 '리딩구단'으로 통 큰 투자에 앞장섰던 삼성이 스포츠단 차원에서 수년째 지갑을 닫고 있는 영향이 컸다. 프로스포츠에서 삼성 그룹이 미치는 직간접적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일종의 '기준'을 제시해 왔던 삼성이 현상유지나 긴축 기조로 돌아서면서 타 구단들에 여파를 미쳤다.
실제 평소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후한 편으로 큰 무리가 없었던 NC는 올 겨울에는 빡빡한 협상으로 선수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창단한지 얼마 안됐을 때는 전반적인 연봉 규모가 크지 않고 저연봉 선수가 많아 사기진작 차원의 올려주기가 가능했다. 하지만 2018년을 제외하고 팀이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올리면서 전반적인 연봉 규모가 커지면서 기조가 바뀌고 있다. 지난 겨울 FA 양의지를 역대 최고액인 4년 총액 125억 원에 영입한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2년 간 FA시장에 몰아닥친 강력한 한파 역시 너도나도 지갑을 닫고 있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올 겨울에 꽤 많은 준척급 FA가 시장에 나왔지만 소위 '대박'은 없었다. FA 이적생은 KIA에서 롯데로 옮긴 안치홍 뿐이었다. 그나마 만족스러운 조건은 아니었다. 많은 선수들은 "구단들의 FA 협상 태도가 거의 담합 수준"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정교한 고과가 지배하는 연봉협상 테이블 특성상 이견은 금액상 어마어마 하게 큰 차이는 아니다. 하지만 돈보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자칫 구단과 선수 간 감정적인 골이 깊어질까 우려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