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가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을 공급받기 어렵게 하려고 미국 정부가 제재 강도를 한층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업계에서는 이런 제재 강화가 실제로 이뤄진다면 화웨이가 반도체 칩 대부분을 공급받는 대만의 TSMC와 거래가 한층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대만 자유시보(自由時報)는 미국 정부가 내년 1월부터 자국 기술이 10% 이상 포함된 제품을 화웨이에 팔 수 없도록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 5월부터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제재를 시행 중이다.
이에 따라 미국 회사들은 화웨이와 원칙적으로 거래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만 화웨이에 제품을 팔 수 있다.
그런데 이 제재는 미국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제3국 기업이어도 제품에 미국 기술이 25% 이상 적용되면 화웨이와 거래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미국이 자국 기술 포함 기준을 현행 25%에서 10%로 대폭 낮추면 많은 제3국 회사 제품들이 제재 대상에 대거 새로 포함될 수 있게 된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를 극복하기 위해 자국산 및 제3국 제품 비중을 크게 높여왔다. 따라서 미국의 제재 강화는 화웨이에 또 한차례의 충격을 줄 수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제재가 실제로 강화되면 화웨이와 TSMC와의 관계를 약화하는 효과가 뚜렷이 나타날 수 있다고 관측한다.
대만의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다. 화웨이는 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반도체 대부분을 TSMC에 의존한다.
화웨이는 퀄컴을 비롯한 미국 반도체 회사로부터 안정적으로 반도체 부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자 산하 반도체 업체인 하이실리콘(海思半導體)이 설계한 반도체를 대거 새로 투입하면서 '반도체 자급' 노선을 걷고 있다.
하지만 하이실리콘은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고 설계와 판매에 전념하는 '팹리스(fabless)' 업체다. 따라서 TSMC와의 관계 단절은 화웨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TSMC 역시 화웨이가 최대 고객사 중 한 곳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만 업계에 따르면 TSMC는 내부 평가를 거친 결과 7㎚(나노미터) 이하 공정 반도체 제품의 경우 자사의 독자 기술 비중이 커 미국 기술 의존도가 9%가량으로 계산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14㎚ 이상급 제품의 미국 기술 의존도는 15% 이상으로 만일 미국이 제재 기준을 10%로 낮춘다면 공급이 어렵게 된다.
화웨이도 미국의 추가 제재 동향을 주시하면서 대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는 미국이 제재 기준을 강화해도 문제가 없도록 TSMC에 의뢰하는 반도체 제품을 7㎚ 이하 공정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자유시보는 전했다.
또 당장 제품 개발이 어려운 14㎚ 이상 공정 제품은 TSMC 대신 중국 국내의 파운드리 업체인 SMIC(中芯國際)에 맡겨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제재 강화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업체들을 포함해 전세계 전자·반도체 업계 전반의 공급사슬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한편,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 합의 체결을 준비 중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 강화는 두 나라 간의 최종 무역 합의 체결에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