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하루는 오전 11시에 시작한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침 겸 점심을 대충 때우고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시장에 차를 몰고 간다. 필요한 재료를 사서 서울 광진구 자신의 가게에 들어가는 시간은 오후 3시쯤. 그날 하루치 장사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2018년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는 이럴 줄 몰랐다. 그 무렵 생각하기를 2020년 1월쯤엔 빚을 어느 정도 갚고 차곡차곡 쌓을 일만 남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다달이 원금과 이자 200여만원씩을 은행과 지인에게 갚고 있다. 권리금 8000만원만 빼도 어느 정도 빚을 갚을 수 있지만 가게도 나가질 않는다. 광진구에서 작은 선술집을 운영하는 장모씨(40)의 이야기다. 장씨는 “빚만 없어도, 월세만 오르지 않아도 살 것 같은데 당분간은 힘든 일이라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장씨의 시름은 다른 영세자영업자들에게도 낯선 일이 아니다. 21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 가구의 평균 부채는 1억1063만원으로 전년도보다 3.8% 증가했다. 기업과 가계 통틀어 자영업자의 부채 증가 규모가 가장 컸다. 한국은행의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개입사업자(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은 총 338조5000억원으로 2018년(313조원)보다 8.1% 증가했다.
쌓아둔 빚이 많더라도 벌이가 충당이 되면 빚은 ‘자산’으로 가치가 있다.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마다 상황이 천차만별이라고는 하나 근로자 가구와 비교했을 때 자영업자의 소득이 턱없이 적다는 통계를 눈여겨볼 만하다. KEB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기준 자영업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90만2000원으로 근로자 가구(535만5000원)보다 145만3000원 적었다. 1990년엔 자영업자 가구(89만2000원)와 근로자 가구(90만2000원)의 월평균 소득 차이가 1만원밖에 나지 않았다.
장씨는 자영업자를 압박하는 5가지로 월세, 권리금, 대출금, 낮은 소득, 치열해진 경쟁을 꼽았다. 그는 “일단 가게를 내놨는데 권리금 8000만원 얘기를 들으면 다들 그냥 돌아간다. 월세라도 안 오르면 좋을 텐데”라며 “캔맥주 값은 내려가고 생맥주 값은 올랐다.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트렌드니 뭐니 얘기 나오면 더 맥이 풀린다”라고 말했다.
영세 자영업자들, 특히 외식업이나 소매업 종사자들은 전방위 경쟁에 내몰렸다. 대기업의 가정간편식(HMR), 배달의민족을 필두로 한 배달 플랫폼 서비스, 날로 덩치를 키워가는 이커머스 업계까지 영세한 사업자일수록 경쟁력이 떨어지는 무한경쟁 체제에서 허덕이는 셈이다.
월세, 권리금, 대출금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배달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김모씨(37)도 건물주와 권리금 문제로 다툰 뒤 타격을 입었다. 건물주가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는 식당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쳤다. 업종이 바뀌면 수천만원에 이르는 권리금을 받을 수 없다. 김씨는 ‘월세를 올리려는 꼼수’라고 보고 있다.
김씨는 “작년 1월까지는 사업도 잘 되고 바빴다. 직원 8명이 일하다 배달 경쟁이 심해지고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점점 어려워졌다”며 “건물주와 다툼까지 생기니 의욕이 없어지고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영세자영업자들에게 ‘볕들 날’은 언제 올까. 당장 지금의 불경기가 반전할만한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고정적인 비용이 줄고 완만하게나마 성장곡선이 그려진다면 장기적으로는 나아질 수도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8년째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전모(42)씨는 “대출금 갚기까지 피 말리는 몇 년을 보냈다”며 “그 시간을 견디고 나니 큰돈은 못 벌어도 사는데 큰 어려움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수시장만 기대서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내놓는 동시에 외국인 관광객을 늘리는 식으로 시장을 넓힐 필요가 있다”며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드는 건 시장이고, 시장이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